
류동근 편집국장의 REVIEW
사물의 가치를 변별하고 자기의 행위에 대해 옳고 그름, 선과 악의 판단을 내리는 도덕적 의식을 우리들은 ‘양심(良心)’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인간으로서 당연히 가져야 할 기본적인 도리이자, 더불어 사는 세상에 꼭 필요한 것이 바로 양심이다.
양심이라는 말 자체는 긍정적이고 좋은 뜻으로 많이 쓰인다. 하지만 이 양심은 ‘양심이 없다’ ‘양심을 팔다’ ‘양심을 속이다’ ‘양심의 가책을 받다’ ‘양심에 털이 났다’ 등 대부분 부정적인 뜻으로 많이 사용되고 있다. 그만큼 양심을 지키기란 쉽지 않음을 방증하기도 한다.
양심의 ‘양’자는 어질 양(良)이지만, 양심을 저버리고 못된 행동을 일삼는 사람을 ‘양아치’라고 부르기도 한다. 양아치는 국어사전에 ‘품행이 천박하고 못된 짓을 일삼은 사람을 속되게 이르는 말’로 쓰여 진다.
공교롭게 어두에 ‘양’이 같이 쓰이면서 양심에 털이 난 사람들이 양아치로 오버랩 된다.
우리업계에 이러한 비양심적인 양아치들이 얼마나 있을까를 생각해 보면 눈앞이 캄캄해진다.
그동안 수도 없이 많은 사람들을 봐 왔고 현재도 이러한 분들이 버젓이 생업에 전념하고 있기도 하다.
회사가 어려우면 고의부도를 내고 거래업체와 소비자들에게 엄청난 피해를 입힌 후 잠적했다가 잠잠해지면 슬그머니 나와 또다시 가족 명의로 사업을 하는 사람이 부지기수다. 우리신문에서도 수차례 업계의 윤리강령을 만들자고 외쳐보지만 우이독경이다. 개개인의 양심있는 행동과 책임이 동반돼야 하는데, 비양심적 행동을 스스로 제어 할 만큼 우리업계의 뿌리는 탄탄하지 않기 때문이다.
심지어는 신문에 광고를 낸 후 수많은 입금독려에도 불구하고 타 신문에 버젓이 광고를 내는 양심불량인 사업주도 있고, 소위 간보기로 광고를 내고 연락을 두절해 버리는 양아치 대표들도 있다. 최소한 자기 자신에게 조차 부끄러움도 모르고 사는 사람들이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가끔은 양심에 찔리는 짓을 할 수도 있다. 그렇다손 치더라도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자신의 잘못을 스스로 돌아보고 책망하는 가책(呵責)을 하게 된다.
그런데 양심에 가책을 느끼는 이러한 행동들이 반복되다 보면 그 행동들을 합리화시켜 죄책감을 무디게 한다. 그런 사람들이 우리 업계에 너무나도 많은 것이 문제다.
여행업계 경기가 밑바닥으로 치닫으면서 제3자 카드 도용사고가 또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
최근에는 선량한 사람들을 부추겨 투자를 받은 사업이 실패로 돌아가면서 ‘역대급 사기극’이 조만간 수면위로 떠오를 것이라는 소문도 무성하다.
양심에 털이 난 자들만 두발 뻗고 잠을 자는 요지경 업계가 된 듯해 이 가을이 몹시 씁쓸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