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발변수 연속의 ‘위기관리’로 업무 맷집 키워
실핏줄 터져가며 신규작업… 끝난 뒤 큰 보람
집안일보다 회사에 나와 일하는 것이 더 재미있다는 김선영 과장. “과거 해외로 출장을 가는 것이 슬럼프 극복 방법 중 하나”였다고 말하는 그는 ‘직장인의 정석’같은 면모를 보이기도 했다. 주연경 대리는 입사 이래로 2주 병가를 낸 것 외에 단 한 번도 쉰 적이 없다. 초중고 대학교까지 다니면서 개근상은 단 한 번도 놓친 적 없는 그는 정년까지 다니는 것이 목표라는 당찬 포부를 전했다. 아시아나 사옥에서 만난 ‘차분하지만 카리스마’ 있는 김선영 상용판매팀 과장(이하 선)과 ‘아시아나의 살림꾼’ 주연경 판매지원팀 대리(이하 연)를 만나 ‘사람냄새’ 나는 그녀들의 이야기를 들었다.
<김미루 기자> kmr@gtn.co.kr
아시아나항공에 입사하게 된 배경은 무엇인가
배우 김주미씨의 ‘그녀의 이름은 아시아나’라는 광고를 처음 보고 꼭 아시아나에 입사해야겠다 생각했다. 운이 좋게도 1,2,3차 마지막 면접까지 한 번에 합격했다. 마지막 임원면접에서는 “‘그녀의 이름은 아시아나’ 광고에서처럼 내가 아시아나의 그녀가 되고 싶다”라고 어필하기도 했다.
친언니가 아시아나에 다니고 있기 때문에 ‘아시아나’라는 이미지가 익숙했다. 언니가 회사를 다니며 회사에 대한 긍정적인 이야기를 많이 해줘서 대학 졸업을 마치고 공고가 나자마자 바로 지원, 합격을 해서 2000년 1월1일 입사했다.
입사 후 어디 부서에 있었는가
입사일자로 보면 94년 4월 근무를 시작했다. 근무를 하다가 97년 IMF의 여파가 99년까지 지속돼 그 당시 입사자들이 모두 그 해 10월부터 1년 동안 휴직에 들어갔지만 비서학과 전공을 살려 금호그룹 면접에 합격했다. 차후 아시아나항공으로 다시 재입사를 하게 돼 올해부로 20년 근속자가 됐다.
입사하고 강남 발권카운터, 항공지원본부 서울여객지점 좌석관리, 판매지원에서 일반관리 쪽으로 오게 됐다.
현재 모든 스팟성 업무 등과 같이 사무실이 전반적으로 잘 돌아갈 수 있게 관리를 하고 있다. 여러 가지 업무를 해봤지만 마지막으로는 영업활동을 하고 싶다.
김포공항 국내선 카운터 업무를 시작으로 아시아나 사람이 됐다.
그 이후에는 예약영업팀에 들어가 예약전화 접수하는 부서로 이동해 근무하다가 그 팀 안에서 서비스 교육하는 지원업무의 교육 부분을 담당하게 됐다.
지난해 3월에는 상용판매팀 프리미엄 서비스센터로 오게 됐다. 지금 몸 담고 있는 상용판매팀은 세일즈 업무를 메인으로 한다. VIP 필요사항 등 고객관리를 하고 있다.
20년 동안 가장 기억에 남는 일
전화상으로 하는 위기 대응팀 업무를 하고 있을 때가 기억에 가장 남는다. 위기상황에 대비해 매뉴얼이 있지만 실제로 상황에 닥치면 돌발변수가 너무 많아 현실에 적용하는 것은 쉽지 않다. 지난 샌프란시스코 공항 착륙 사고 당시, 사고 발생 후 탑승자들의 가족과 전화연결, 상태설명, 병원위치 파악 등 원활하게 사고를 진압할 수 있게 차분히 절차를 밟고 최종 결과보고까지 확실히 마무리했다. 이와 같은 내용을 후임에게 내용 전달을 할 때 뿌듯했다.
최근 사무실을 이전했는데 사무실 이전 건에 대한 총괄업무를 맞게 됐다. 3개월 동안 인테리어, 도면 의뢰, 방 배치와 같은 준비과정을 거쳐 공사가 진행되는 한 달 동안은 상황 진단을 위해 사옥을 계속해서 방문, 관리 작업을 했다. 이사를 마무리하고 눈에 실핏줄까지 터져 만나는 사람마다 괜찮냐고 물었을 만큼 상태가 좋지 않았지만 직원들이 “환경이 좋아졌고, 깨끗하다. 편리하다”와 같은 의견을 전해 보람을 느끼고 있다.
장기 근속할 수 있었던 원동력
시간이 이렇게 빨리 갈 줄 몰랐다. 내가 이렇게 나이를 먹은 지도 몰랐다. 아마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었기에 한 회사에서 20년을 보낸 것 같다. 한 해 한 해 세고 있었다면 지금 이 순간이 있었겠는가. 여기에 가족 같은 동료들도 장기근속을 할 수 있었던 이유라고 생각한다. 아시아나의 가장 큰 장점은 동료들이 모두 가족 같다는 점이다. 서로 챙겨주고 보살펴 주는 동료들 덕분에 오래 다니지 않았나하는 생각이 든다.
성격 자체가 높낮이가 심한 편이 아니다. 잘 수긍하는 편이다. 그렇기 때문에 회사 생활하는 것 또한 큰 불만 없는 것 같다. 평생 일을 해야 되겠다고 느꼈던 순간이 있다. 출산 후 3개월 병가를 이용했던 기간이다. 쉬는 3개월 동안 무기력함을 느꼈다. 회사를 다니며 주어진 업무를 하는 것이 그리웠다. 회사 복귀 후, 일을 다시 할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함을 느꼈으며 평생 잘할 수 있는 것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스트레스 해소방법은 무엇인가
여행이다. 항공사에서 근무 시, 제일 큰 혜택은 쉽게 여행을 갈 수 있다는 것이다. 결혼 전에는 마음 맞는 친구들이나 동료들과 많게는 한 달에 세 번까지 여행을 가기도 했다. 서비스 교육을 담당하고 있을 시에 해외출장이 잦았다.
이 또한 슬럼프를 극복할 수 있는 리프레시 포인트였다. 힘들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하나의 기회였다고 생각한다.
일주일에 두세 번 사우나를 간다. 외부 고객을 상대하는 업무였다면 지금은 직원들을 대하는 업무다. 말 그대로 아시아나의 반장 역할이다. 140명의 직원들이 공지한 것들을 이행하지 않았을 때 독촉하는 업무도 한다. 듣는 사람도 스트레스겠지만 이를 말하고 독촉하는 것 또한 스트레스다.
지금 하고 있는 일은 잘해도 욕먹고 못해도 욕을 먹는 업무라 생각한다. 이사하는 달의 그달 주말에는 사우나에서 살았던 것 같다. 여행은 틈틈이 정말 많이 다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