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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92호 2018년 05월 21 일
  • [GTN 광장] 박수 칠 때 떠날 수 있는 용기



  • 김기령 기자 |
    입력 : 2018-05-11 | 업데이트됨 : 3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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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어드메쯤/ 아침을 몰고 오는 분이 계시옵니다

그분을 위하여/ 묵은 이 의자를 비워 드리지요

지금 어드메쯤/ 아침을 몰고 오는 어린 분이 계시옵니다

그분을 위하여/ 묵은 이 의자를 비워 드리겠어요

먼 옛날 어느 분이/ 내게 물려주듯이

지금 어드메쯤/ 아침을 몰고 오는 어린 분이 계시옵니다

그분을 위하여/ 묵은 이 의자를 비워 드리겠습니다.

 

-조병화 <의자>

 

 

고교 시절에 이 시를 읽으며 막연하게나마 ‘아침을 몰고 오는 분’이 미래의 나이며 내가 그 주인공이 될 수 있다는 것에 삶의 희망을 가졌고 ‘묵은 이 의자를 비워 드리겠습니다’라는 말은 기성세대가 여유와 품격을 가지고 담담하게 세대교체를 수용하며, 자신의 기득권을 내려놓고 현실을 받아드리는 모습으로 이해했다.

 

 

인생은 누구랄 것 없이 ‘아침을 몰고 오는 분’에서 출발해 ‘묵은 이 의자를 비워 드리는’ 존재로 삶의 무대에서 퇴장한다.

 

 

누구나 끝까지 육체의 젊음을 유지하고 자신의 일터에서 인정받고 싶어 하지만 그것은 희망사항일뿐 하루가 다르게 육체의 한계를 느끼고, 이전과 완전히 다른 세대들의 등장으로 그들에게 실력과 능력에 밀려 자의적으로 의자를 내주는 게 아니라 스스로 밀려날 수밖에 없는 사회구조가 됐다.

 

 

그러나 우리 사회에는 자신이 무대에서 떠나지 않고 영원히 살 것 같이 사는 사람들, 아직도 비워줄 준비를 하고 있지 않은 사람들이 여전히 많다. 물론 노련함과 경험은 중요한 자산이다.

 

 

그러나 세상은 변화하고 있는데 매일 흘러간 레코드판이나 돌리며, 꼰대적 사고로 아랫사람을 억압하고 짓누르며 자신만이 최고라는 아집은 과거의 전형적인 기득권세대의 모습을 그대로 드러내는 것이다. 그것이 지속되면 어쩌면 그가 무대를 떠날 때, 그 누구에게도 박수를 받지 못한 채 슬픈 뒷모습을 보이며 쓸쓸히 떠날 수도 있다.

 

 

예를 들어, 과거와 다르게 TV드라마 중에 장년이 주인공인 드라마가 부쩍 많아졌고 예능도 그러한 경향이 많다. 그 이유는 장년층 시청자가 여전히 많고 가장 소비여력을 가진 집단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나는 그 이면에 방송국에서 여전히 장년의 PD와 작가가 아직도 기득권을 행사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과거라면 뒤로 물러나 후배들을 지원하는 역할을 했겠지만 장년세대가 부와 힘을 쥐락펴락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아직도 그들은 기득권을 내려놓지 않고 여전히 자신이 주역이라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문제는 비단 방송국뿐만 아니라 한국사회의 모든 영역에서 그런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는 것이다. 물론 이것이 다 나쁘다는 말이 아니다. 축적된 지식과 노련한 경험은 어떤 분야에서도 나이와 상관없이 다 필요하고, 특히 자신의 영역에서 독보적인 존재를 나타내는 예술과 문화의 영역에서는 더욱 필요한 것이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지만 의자를 내어 줄 준비가 안 돼 있고 그럴 여유조차 갖고 있지 않는 게 문제다.

 

 

우리는 언젠가는 떠나고 비워야 한다는 것을 준비하고 살아 한다. 그것이 일이든 명예든 삶이든. 관성과 타성이 된 유아독존은 사람을 추하게 만들고, 무대에서 준비 없이 갑자기 떠나는 것은 충격이 크고 마음이 아프다.

 

 

우리 모두 박수칠 때 떠날 수 있는 용기를 가지고 살자. 그날이 언제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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