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키나와는 1429년 쇼하시가 삼산을 통일한 이후 약 450년간 류큐 왕국으로 불리며, 1879년 일본 영토의 오키나와현으로 편입되기 전까지 독자적인 문화를 형성했다. 동아시아의 해상로라는 지리적 위치와 전쟁 후 미국문화까지 혼합된 오키나와는 한마디로 정의하기 어려운 복잡한 역사를 갖게 됐다.
그러나 굴곡진 사연 속에서도 오키나와 사람들은 고유의 명맥을 이어오며 섬 곳곳에 자신들만의 색깔을 입혀 놓았다. 에메랄드빛 바다와 아기자기한 카페가 즐비한 현재의 오키나와 속에서도 여전히 류큐 왕국의 향기가 남아있다.
<오키나와=조윤식 기자> cys@gtn.co.kr
<취재협조=오키나와관광컨벤션뷰로>
영화로운 류큐 왕국의 상징
류큐 왕국의 모든 정책과 행정은 궁궐인 슈리성에서 이뤄졌다. 2000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록된 이 성은 오키나와 내에서도 가장 유명한 유적지 중 하나이며, 나하국제공항부터 모노레일 노선이 이어져 관광객이 찾아가기도 쉽다.
건축 시기는 13~14세기 정도로 추정할 뿐 정확한 기록이 남아 있지 않아 연도는 알 수 없다. 다만 삼산 시대 때 중산 왕조에 의해 조금씩 만들어지기 시작했다고 유추할 뿐이다. 슈리성은 몇 번의 소실과 재건을 반복하다 2차 세계대전 막바지 미군의 오키나와 침공에 의해 완전히 파괴된다. 이후 1980년대 말부터 본격적인 복원에 착수해 1992년 일부 구간을 개관하면서 현재와 같은 모습으로 복원됐다.
성곽을 따라 봉신문을 통과하면 광장을 중심으로 중앙의 정전과 좌측의 북전, 우측의 남전이 나타난다. 슈리성은 당시 조공국이었던 명나라의 영향을 받아 자금성의 외관을 많이 닮았다. 특히 궁의 중심이 되는 정전은 붉게 옻칠을 하고 용을 그려 넣었다. 북전의 역할도 중국의 사신을 맞이하기 위한 것이다.
반면 일본식으로 지어진 남전은 본토의 사신을 위한 시설로 사츠마 번이 류큐 왕국을 점령하고 난 후에 만들어진 것이다. 붉은 옻에 금색을 칠한 궁궐의 내부에서 번영했던 류큐 왕국의 자취를 느낄 수 있다.
선조들에게 바치는 정열의 춤
에이사는 규본 명절 마지막 날(7월15일) 조상의 혼을 위로하기 위해 마을 청년들이 북을 치고 춤을 추며 마을을 행진했던 오키나와의 전통춤이다. 우리나라의 제사의례와 비슷하지만 엄숙하게 진행되는 우리네와는 달리 흥겹게 춤을 추고 노래를 부르며 넋을 위로한다.
에이사의 하이라이트는 크고 우렁찬 북소리다. 섬지방의 특성상 여성의 경제 활동이 많았던 오키나와에서도 남자가 가장 멋있어 보일 때가 ‘에이사를 할 때다’라는 말이 생겨날 정도로 오키나와의 남자아이들은 어느 정도 나이가 들면 앞 다퉈 에이사 청년단원에 지원한다.
최근에는 전통적인 에이사를 기본으로 현대식 안무와 음악으로 구성한 창작에이사가 개발되고 있다. 무대에서 펼쳐지는 공연은 관광객의 흥미를 위한 요소가 많이 들어가 있지만 마을 공동체를 소중히 여기는 오키나와 사람들의 정신은 변하지 않았다.
현재는 오키나와뿐만 아니라 본토 및 해외에서도 에이사 팀이 만들어지고 있으며 매년 오키나와에서 열리는 ‘세계 에이사 대회’에도 많은 관광객이 찾아 새로운 즐길 거리로 부상하고 있다.
섬사람들의 희로애락이 담긴 노래
오키나와 사람들은 아픈 역사 속에서도 노래를 부르며 어려운 시절을 이겨냈다. 오키나와의 전통 악기인 산신은 목재로 만든 몸통에 뱀가죽을 붙이고 기다란 대에 세 개의 줄을 달아 물소 뿔로 만든 피크로 연주한다.
14세기 명나라에서 전해진 3현 악기를 기반으로 만들어졌으며 본토의 샤미센과는 다른 매력을 갖고 있다. 플라스틱으로 만든 저렴한 제품도 있지만, 장인이 만든 수제 악기는 수십만 엔을 호가한다.
미국 통치 시절에는 오키나와 인들이 미군이 버린 깡통으로 산신을 만들어 전후의 힘들었던 시절을 버텼다고 하니 밝고 튀는 음색이 구슬프게 들리는 것도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노랫가락에는 남녀의 사랑부터 인생의 교훈 등 많은 것을 담고 있지만 우리나라의 ‘아리랑’처럼 삶의 희로애락이 담겨있다.
실제로 나하의 번화가인 국제거리에서도 산신을 곁들인 오키나와 민요를 어렵지 않게 들을 수 있다. 국제거리의 텐부스 칸에서도 나하시 관광협회에서 운영하는 산신 체험 프로그램이 있어 관광객들도 쉽게 오키나와 전통 민요를 체험할 수 있다.
히라타 다이치 오키나와현 문화진흥회 이사장
“오키나와의 문화를 알리는 것이 제 소명입니다”오키나와 출신 예술인 히라타 다이치 씨는 고향의 전통문화를 현대 버전으로 각색한 ‘쉽 오브 더 류큐(Ship of the Ryukyu)’의 총괄 프로듀서다.
그는 오키나와의 전통예술과 역사를 대중에게 쉽고 매력적으로 전달할 수 있도록 현대식 무대와 춤, 음악, 소품 등을 이용해 재탄생 시켰다. 특히 에이사, 류큐 무용, 산신, 가라테 등 오키나와만의 특색을 입혀내는 데 성공했다.
“쉽 오브 더 류큐는 오키나와의 전통을 살리면서 현대적인 연출로 재해석했습니다. 한국의 난타 공연처럼 자막이나 설명 없이도 누구나 쉽게 이해하고 즐길 수 있는 프로그램을 만들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