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의 최남단에 있는 시칠리아(Sicilia)는 지중해에서 가장 큰 섬으로, 제주도보다 14배 크다. 유럽 본토와 아프리카, 중동지역을 이어주는 지정학적인 위치 때문에 흥망성쇠의 고단한 역사를 피할 수 없었다. 그로인해 가는 곳곳마다 이야기가 많다. 가장 번성했던 시절의 그리스 ? 로마를 거리 곳곳에서 만나고, 지중해의 매력도 흠뻑 느낄 수 있다. 시칠리아 이야기를 ‘건축, 역사, 낭만, 휴양’ 4가지 키워드로 풀어본다.
<시칠리아=이기순 기자>
글 순서
上. SICILIA 역사&건축여행
下. SICILIA 낭만&휴양여행
아그리젠토 고고 지구의 ‘신전들의 계곡’에 있는 콩코르디아 신전(Tempio della Concordia). 기원전 450년경에 만들어졌다.
“이탈리아의 뿌리는 시칠리아에서 시작했습니다. 고대 그리스와 로마의 가장 번성했던 시절의 유적이 곳곳에 남아있어, 시칠리아 섬자체가 ‘문명의 박물관’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탈리아를 이해하려면, 시칠리아부터 알아야 되죠”
아그리젠토 지역에서 역사해설 가이드를 하고 있는 쥬세뻬 알라이모(Giuseppe Alaimo)씨가 헤라신전을 가리키며 말한다.
시칠리아의 역사를 알면, 그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기원전 10세기 청동기 시대에 시크리 인, 시카니 인, 엘류미 인이 거주했던 시칠리아는 주석(錫)무역의 중계지로 미케네 문화와도 접촉하며 고유의 문화를 키워왔다. 그러다 기원전 8세기 그리스인들이 ‘아름다운 섬’시칠리아를 발견했고, 동쪽 해안지역에 그들의 속주도시인 낙소스, 시라쿠사를 세웠다. 이때부터 시칠리아 해안지역은 그리스화하기 시작한다. 기원전 6세기에는 오늘날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아그리젠토를 건설했다.
고대로마 초기 시칠리아 동부지역은 고대 그리스의 식민도시인 시라쿠사의 지배하에 있었고, 서부지역은 ‘페니키아인들이 북아프리카에 세운 식민도시’인 카르타고의 통치를 받았다. 시칠리아 북부인 메시나와 시라쿠사간 충돌이 일어나자, 메시나는 동맹국 이었던 로마에 지원을 요청했고 시라쿠사는 카르타고를 끌어들인다. 우리가 알고 있는 포에니 전쟁은 이렇게 시작됐다. 기원전 264년 시작된 로마와 카르타고간의 포에니전쟁은 100년에 걸쳐 3차례 치뤄졌다. 최종 승리를 거둔 로마는 시칠리아 전역을 손에 넣었고, 시칠리아인들은 노예로 전락했다.
고대 그리스·로마의 문화
노르만·아랍문화 융합
곳곳에 완성미 높은 건축물
‘유럽문화의 정수’ 모여있어
기원전 5세기부터 그리스 문명의 도시국가를 건설하고, 수준 높은 문화와 예술의 삶을 살고 있었던 시칠리아인들에게는 천청벽력같은 일이었다. 시칠리아인들은 로마제국에 귀속된지 500년이 지난, AD 3세기에서야 온전한 로마시민이 될 수 있었다. 그후 로마제국의 세력이 약해지면서 9~10세기엔 아랍인, 11세기엔 노르만인의 통치를 받았다. 12세기 시칠리아 왕국부터 1946년 이탈리아 공화국이 건국될 때까지, 신성로마제국·스페인·오스트리아의 통치를 차례로 받았다.
이로 인해 자연스럽게 아프리카와 중동의 이슬람 문화, 그리스의 비잔티움, 북유럽의 노르만 문화가 기존에 존재했던 라틴 문화와 섞이면서 격조 높으면서 독특한 시칠리아의 문화를 만들어 냈다.
9세기 후반 튀니스의 아랍인들이 시칠리아를 점령했고, 이들은 팔레르모에 수도를 세운뒤 200여 년간 시칠리아를 통치했다. 11세기 초에는 노르만족이 팔레르모를 정복, 시칠리아 왕국을 세웠다.
시칠리아의 주도인 팔레르모는 로마제국과 비잔틴, 아랍, 노르만 세력의 영향으로 다양한 문화가 융합된 곳이다. 지리적 조건 때문에 많은 세력이 다툼을 벌였던 곳이라, 각 제국이 번영했던 당시의 화려한 문화가 도시 곳곳을 가득 채우고 있다.
노르만궁전(Palazzo dei Normandi O Reale)은 특정 시기와 민족의 건축양식으로 완성되지 않고, 오랜 세월동안 다양한 건축 양식이 더해져 특이한 모습을 이루고 있다. 9세기 아랍인들이 성벽을 쌓아 요새를 만들어 사용하고 있던 것을 노르만인들이 아랍인을 몰아내고 팔레르모를 점령한 후 성벽 안에 궁전을 확장, 개축했다.
궁전의 내부는 전형적인 바실리카 양식이나, 벽면은 비잔틴 양식의 화려한 모자이크 장식으로 치장됐다. 천장은 목재를 이용해 벌집모양으로 조각한 아랍풍이다. 내부 벽면 좌우측에는 구약과 신약의 이야기가 그려져 있다. 비잔틴적인 요소와 이슬람의 예술이 섞인 노르만 미술의 정수를 보여준다.
팔레르모 시내는 노르만, 아랍, 비잔티움 문화가 섞인 아름다운 건축물이 많다.
팔레르모의 북쪽에 위치한 몬레알레(Monreale)는 화려한 모자이크 장식으로 유명하다. 해발 300m가 조금 넘는 구릉지대에 형성된 작은 마을로, 언덕에 오르면 팔레르모 시내가 한눈에 보인다. 반나절 정도 관광하기에 적합하다.
몬레알레는 몬테(monte : 산)와 레알레(reale : 왕)에서 유래한 것으로, ‘왕의 산’이란 뜻. 예전에 왕족들의 피서지였던 곳이다. 특히 두오모 성당의 모자이크가 유명한데, 내부를 가득 메운 비잔틴 양식의 황금색 모자이크 장식이 독특하다. 두오모는 굴리엘모 2세가 1172~1176년 사이에 지은 것으로 노르만 양식의 대표적인 시칠리아 성당이다. 노르만 양식이란 11세기 말부터 12세기 때까지 발달한 것으로, 고딕양식이 시작되기 전까지를 가리킨다. 나무로 만든 천장과 건물의 구석구석에 묘사된 기하학적인 무늬가 이 양식의 특색이다. 성당 내부는 오른쪽에서 시계방향으로 이어지는데, 창세기와 노아의 방주부터 구약성서의 내용이 순서대로 묘사돼 있다.
1997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아그리젠토(Agrigento) 고고 지구는 기원전 6세기말부터 5세기 중엽까지 번성했던 도시로, 그리스인들이 그들이 영광을 영원히 남기고자 건설한 곳이다. 신전들의 계곡(Valle dei Templi)라고 불리는 이곳은 입구쪽 헤라신전을 시작으로, 남동쪽으로 길게 뻗어있는 구릉지 위에 콘코르디아, 제우스, 헤라클레스 등 수많은 신전들을 집중적으로 건축됐다. 그리스 유물과 유적이 많이 남아 있어 고고학의 보고라 불린다.
피아짜 아르메리나의 로마인 별장에 있는 모자이크. 일명 ‘비키니를 입고 있는 여인들’로 불린다.
일명 ‘황제의 빌라’로 대표되는 피아차 아르메리나(Piazza Armelina)는 로마시대 모자이크의 진수를 구경할 수 있는 곳이다. 부유한 로마인이 만들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로마식 별장(Villa Romana Casallle)은 크고 작은 방을 모두 합치면 63개나 된다. 여기에 사용된 작은 돌조각만 3000만 개에 달하며, 다양한 표현을 가능케한 돌의 색깔만 해도 37종류가 넘는다고 한다. 특히 당시의 시대상을 나타내는 화려한 컬러의 ‘대사냥’ 모자이크화가 장관이다.
시라쿠사의 고고학 유적지에 남아있는 ‘미스테리한 동굴’ 디오니소스의 귀. 높이 23m, 길이 65m. 입구에서 안쪽까지 넓이는 5~11m에 달한다. 일꾼 6만명을 고용, 20일만에 5km에 달하는 벽을 만들었다.
그리스인들의 문화가 고스란히 보존된 시라쿠사(Siracusa)는 고대 그리스 시대에 건설된 도시이다.
구시가지가 있는 오르티자(Ortigia)섬과 신시가지가 있는 시내로 구분. 포에니 전쟁때 카르타고 편으로 전쟁에 참여하여 로마에 패한 이후 로마통치권의 중심지로서 번영을 누림. 덕분에 시라쿠사는 고대 그리스, 로마 유적지가 많다. 부력의 원리를 깨닫고 목욕탕에서 알몸으로 뛰어나와 유레카(Heureka)를 외쳤다는 그리스의 유명한 수학자 아르키메데스도 이곳 출신이다.
‘풍요로운 삼각형의 땅’ 의미
트리나크리아
시칠리아를 여행하다 보면 흔하게 만나는 모양의 상징이 있다. ‘세발 달린 메두사’인 트리나크리아(Trinacria? 사진)이다. 트리나크리아는 시칠리아의 옛 지명이자, 삼각형 모양의 땅이란 뜻. 세 개의 발은 시칠리아 서쪽 마르살라(Marsala) 의 릴리베오(Lilibeo)곶, 남쪽 빠치노(Pachino)의 파쎄로(Passero)곶, 동쪽 메시나(Messina)의 페로로(Peloro)곶을 가리킨다. 각각의 발은 유럽, 아프리카, 중동지역을 향한다. 메두사의 머리는 뱀 대신, 밀 모양의 곡식으로 치장했는데, 시칠리아가 고대 로마시대부터 밀 생산지로 유명했기 때문이다.
그리스 신화속 메두사는 원래는 금발의 아름다운 여인이었다. 비극은 ‘바다의 신' 포세이돈의 마음에 든 것. 질투에 사로잡힌 아테네는 그녀를 괴물로 만들었다. 메두사는 포세이돈과의 사이에서 날개 달린 말인 페가수스와 거인 크리사오르를 낳는다.
시칠리아는 이탈리아의 매력이 함축된 곳
‘그리스+이태리 7박9일’ 상품 기획
박용주 코오페라 대표
“유학공부를 포기할 만큼, 여행업이 좋았죠. 20년 넘게 이탈리아에 살고 있지만, 아직도 그 매력을 다 알지 못합니다”
1991년 디자인과 문학을 공부하러 이탈리아에 온 20대 청년은 아르바이트로 시작한 가이드가 적성에 맞고 재밌었다. 그렇게 시작된 여행업. 박용주<사진>코오페라 대표는 해외여행 자유화이후 물밀 듯 들어오는 유럽여행객으로 돈도 제법 벌었다. 결혼도 했고, 첫 아들도 낳았다. 그러다 1997년 IMF 외환위기를 맞았다. 유럽에서 한국 여행객도 사라졌다, 그러나 그해 그는 ‘코오페라’를 설립했고, ‘위기를 기회로 삼자’고 다짐했다.
오페라(Opera)는 우리가 알고 있는 ‘가극’이라는 음악용어외에 ‘일(Work)’이라는 뜻도 있다. 코오페라는 ‘함께 열심히 일하자’는 의미이다. 직원 한 명으로 시작한 초기에는 박대표가 직접 로마에서 봉고차를 몰고런던까지 가서 여행객들을 픽업해 베를린까지 커버했다.
10년 투지와 열정 끝에 지금 코오페라는 유럽 현지여행사 최초 월급가이드 10명을 포함, 직원 40명의 ‘이탈리아 전문 여행사’로 자리 잡았다. 지난해 10월 대한항공 이탈리아 전세기 상품까지 성공시켜, 명실공히 경쟁력 있는 유럽 현지여행사임을 입증했다.
지난 10~17일까지 시칠리아 미디어 팸투어까지 추진, 이탈리아에 대한 ‘무한애정’을 가진 박대표와의 코오페라 현황과 계획에 대해 들어봤다.
Q. 시칠리아 팸투어를 하게 된 이유는?
이탈리아의 수많은 관광지가 있지만, 시칠리아는 한번 오면 매년 다시 찾게 되는 곳이다. 이탈리아 역사, 문화, 예술이 집약된 곳이라 단독여행상품으로도 충분한 경쟁력을 가지고 있다고 판단됐다. 시칠리아가 가지고 있는 매력에 비해, 한국여행객에게는 홍보가 미흡한 실정이다. 카타니아관광청 등 이탈리아 지자체의 적극적인 지원으로 성사될 수 있었던 이번 팸투어가 시칠리아와 한국 여행객을 잇는 브릿지가 되길 바란다.
Q. 2015년 ‘대한항공 이탈리아 전세기상품’은 어땠나?
지난해 10월 한진관광과 말타, 남부 이탈리아 등 총 7개의 코스로 나눠 대한항공 전세기 상품을 판매했다. 270명을 모객,했고, 고객의 만족도도 높았다. 고가 상품이었지만, 고객반응이 뜨거웠고 모객도 수월했다.
Q. 올해 계획과 코오페라의 주력상품은?
여름시즌을 겨냥, 올해 최대 히트 드라마인 KBS ‘태양의 후예’의 촬영지인 자킨토스를 포함한 ‘그리스+이태리 7박9일’상품을 적극적으로 판매할 예정이다. 이번 상품은 알리탈리아항공을 이용, 그리스의 아테네, 아라호바, 델피, 자킨토스, 고린도스와 이탈리아의 로마, 피렌체, 베니스, 밀라노를 여행하는 ‘알짜’상품이다. 겨울시즌엔 ‘스위스+이태리’ 등 이탈리아를 기본으로한 2개국 투어상품을 확대해 나갈 계획이다.
문의 : 코오페라 서울사무소 02)3276-2987 seoul@coopera.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