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지연 알리바바투어 대표에게 여행업은 운명처럼 다가왔다. 마치 꼭 여행인이 돼야만 하는 것처럼 모든 상황이 그를 향해 움직였다. 여행업에 입문한 후 박지연 대표는 매번 일에서 보람을 느꼈다. 열심히 기획한 상품의 반응이 좋으면 희열을 느꼈고, 이 기쁨은 그가 더 나아갈 수 있게 만들어줬다. 그는 후배들이 호기심을 잃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또한 일을 시작할 때의 열정을 지속적으로 끌고 갔으면 한다는 바람도 함께 전했다. <송유진 기자> yjs@gtn.co.kr
>>어떠한 과정을 거쳐 알리바바투어의 대표가 됐나.
대학교 시절, 중어중문학을 전공했다. 대학교를 졸업할 때쯤 전공을 살려서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를 고민했다. 여행업에 대해서는 하나도 모르는 상태였다. 그러는 동안에 이태원 쇼핑센터에서 아르바이트 제안을 받았다. 당시 중국인 교회를 다녔었는데, 화교 친구들이 아르바이트를 소개해 줬고 3개월 동안 일을 했다. 대만과 홍콩 여행객들이 쇼핑을 하러 한국에 왔었다. 그 중 기억에 남는 사람이 한 명 있었는데, 일주일에 한 번씩 쇼핑을 하러 왔다. 알고 보니 여행 인솔자였다. 그를 보면서 이러한 직업을 가진 사람은 해외에 자주 나가겠구나 하는 생각을 했고, 여행에 관심이 가기 시작했다. 이때 친구 한 명이 여행사에서 일을 하는 게 어떻겠냐는 제안을 했다. 나는 바로 동의했다. 이후 여행사의 중국사업부에서 일을 시작했다. 당시 중국은 특수지역으로 통했다. 패키지 여행이 아닌 특수 목적에 의한 방문이 대부분이었다. 입사한 지 3개월이 됐을 때, 나는 교원 연수 프로그램을 받으러 가는 단체의 인솔자를 맡게 됐다. 처음으로 가본 중국은 신세계였다. 중국을 가는 것 자체가 하나의 로망이었는데, 소원을 이루게 된 것이다. 이게 바로 내가 앞으로 가야 할 길이라는 것을 깨달은 순간이었다. 1년 정도 일을 한 후, 딜레마에 빠지게 됐다. 앞으로의 비전에 대해서 고민하는 시기이기도 했다. 이후 결혼을 하면서 변화를 맞이한 이후 랜드사 OP로서 경험을 쌓았다. 그리고 중국 랜드사에 입사해 본격적으로 일을 했다. 중국 민항이 들어오면서 중국 여행이 늘어날 때였다. 하지만 중국에 대한 정보를 구할 수 있는 채널이 거의 없었다. 중국에서 사가지고 온 지도, 책자, 신문으로 스스로 일정을 짰다. 지도를 보고 자로 재서 실제 거리를 측정하기도 했다. 새로운 곳에 대해서 공부하는 게 매우 재밌었다. 이후 1997년, 민항 랜드사를 거쳐 민항 대리점 오픈 멤버로 들어가게 됐다. 일을 하면서 제일 좋았던 것은 내가 좋아하는 나라에 가서 새로운 것을 경험하고, 여행에 필요한 것들을 뽑아 와서 그것이 고객에게 잘 맞춰질 수 있도록 하는 그 과정이었다. 질 좋은 상품과 합리적인 가격으로 탄생한 상품이 좋은 반응을 얻을 때, 그 때의 쾌감은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 당시 영업도 같이 했었는데, 여행사 관계자들과 협상하는 것도 매우 재밌었다. 하지만 2008년 리먼 브라더스 사태로, 중국 민항의 전성기가 조금씩 꺾이기 시작했다. 지금의 방식으로는 무언가 새로운 게 나오지 않을 것 같았다. 나는 알리바바투어라는 회사를 설립했다.
>>회사를 운영하면서 있었던 에피소드에 대해서 말해 달라.
알리바바투어는 처음에 중국 쪽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하지만 이미 패키지 시장 가격이 너무 하락한 상태였다. 그때 마침 예전에 근무했던 회사가 라오스 전세기를 하게 됐다. 사전 조사를 위해 라오스에 갔는데, 라오스는 생각보다 괸장한 매력을 갖고 있는 곳이었다. 도시 자체는 황량했지만 막상 시내를 걸어보니, 그 분위기가 달랐다. 마주치는 사람들 또한 선량했으며, 그들로부터 힐링의 느낌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회사를 운영하면서 어려움도 있었다. 현지에 라오스 여행사가 많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들로부터 얻는 자료가 한정돼있었으며, 상품가가 일단 너무 높았다. 패키지 상품으로는 어려움이 있을 것으로 생각돼 에어텔 상품도 개발했다. 라오스에 가보면 외국인 배낭 여행객들이 매우 많았다. 유럽인들은 보통 한 달, 두 달 동안 방비엥에서 체류한다. 직접 다녀보니까 자유스러운 분위기가 좋았으며, 젊은 청춘들이 여행을 떠나면 제격이라고 생각했다. 당시 주로 장거리 에어텔 상품이 있었는데, 단거리 에어텔 상품을 만들었다. 공항에서 픽업해주고, 방비엥까지 버스를 제공해주는 식이었다. 이러한 라오스 상품이 지금까지 쭉 이어져왔다. 특히 지난해 ‘꽃보다 청춘’ 방영으로 동계 시즌 모객 실적이 매우 좋았다. 라오스는 앞으로도 가능성이 높은 지역이기 때문에 더욱 기대가 된다.
>>여행업에서 갈수록 여성들의 활약이 두드러지고 있다. 특별한 이유가 있다면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여행업은 여성에게 딱 맞는 것 같다. 사람의 감성을 터치해줘야 하는 부분이 많고, 세심하고 꼼꼼하게 작업해야 하는 부분도 있기 때문이다. 물론 남성들 중에도 섬세한 사람들이 있기는 하지만 이러한 능력은 여성에게서 더 발휘되는 것 같다. 예를 들면 노을이 질 때, ‘이 식당에서 노을을 바라보면서 밥을 먹어야 돼!’라고 생각하는 게 필요하다. 항공사의 경우, 기내 서비스에 있어서 손님들이 원하는 서비스를 캐치해내는 능력이 중요하다. 직원들에게도 이러한 디테일한 면을 강조한다. 큰 것은 누구나 만들 수 있지만 작은 것까지 챙기기가 어려울 수 있기 때문이다. 작은 나사 하나 때문에 큰 것이 전부 망가질 수도 있다.
>>여행업계가 갖고 있는 문제점이 있다면 무엇인가. 이에 대한 생각은 어떠한가.
전형적인 빈익빈부익부 현상을 보이고 있다. 큰 곳은 계속 크고, 작은 곳은 버티다가 사라지기도 한다. 이러한 것을 보면 굉장히 안타깝다. 가격만으로 승부하고 있다는 점에서도 문제가 있다. 상품이 아무리 좋다고 해도 여행객은 가격이 낮은 상품을 선택한다. 그리고는 그 나라가 별로라고 말한다. 좋은 상품을 만들면 여행객의 만족도도 분명 더 커질 것이다. 나아가 전문여행사가 더 많이 살아남을 수 있는 길이 생겼으면 좋겠다. 전문여행사 대표는 그 나라를 정말로 사랑하기 때문에 시작한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항공 좌석, 현지 호텔을 확보하지 못해서 꿈을 이루지 못한 경우도 많다. 이런 부분에 있어서 공생할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졌으면 좋겠다. 이 업계를 건강하게 같이 끌고 가려 한다면 전문여행사를 운영하는 사람들과 함께 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는 게 필요하다.
>>여행업계를 어떻게 전망하는가. 여행사가 해야 할 역할은 무엇인가.
모든 정보가 다 노출돼 있다. 여행을 하는 과정에서 여행객이 모든 것을 다 선택할 수 있다. 시스템 하나로 여행을 갈 수 있는 상황이 됐다. 하지만 기계가 하는 것에는 한계가 있다. 이러한 시스템 속에서 분명 사람이 해야 할 일이 있다. 예를 들어, 많은 정보들 가운데 여행객이 원하는 정보만을 우리가 선별해야 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 일종의 여행 컨설팅으로, 수많은 정보 중에서 여행객에게 맞춤화된 정보를 제공하는 것이 필요하다.
>>앞으로 목표나 계획이 있다면 무엇인가.
내 개인적인 성향을 보면 ‘나는 여행업을 할 수밖에 없구나’하는 생각이 든다. 이러한 생각이 드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는데, 그 중 하나가 엄청난 호기심 때문이다. 새로운 것을 보면 그냥 지나치지 않는다. 궁금하면 알아보고, 찾아보고, 무엇이든 경험해봐야 한다. 뭔가를 해보는 데 있어서 겁도 없는 것 같다. 혼자 길거리를 돌아다니고, 재밌는 것을 찾으면 매우 즐겁다. 그래서 지금까지 여행업에 종사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아직까지도 꿈을 갖고 있다. 어딘가로 떠나서 재밌는 것을 해보고 싶다. 더욱 장기적으로는 바람직한 여행 문화를 만들고 싶다. 지난해 겨울, 여행객들이 라오스에 대해 기본 지식 없이 출발하는 경우가 많았다. 배경 지식이 없다보니 여행객들이 실망을 하고 돌아왔다. 라오스는 동심으로 돌아가서 자연 그대로를 느껴야 하는 지역이다. 여행객들이 이를 숙지하고 갔다면 라오스의 매력을 더욱 잘 느낄 수 있었을 것이다. 앞으로 끝까지 버티겠다는 정신으로 나아갈 것이다. 예전에 비해서 내가 책임져야 할 직원들이 늘어났다. 그들의 꿈과 희망이 지금 이 회사에 있는데, 내가 더욱 열정을 갖고 일해야 하지 않을까. 잠을 자기 전에도 늘 버텨야 한다고 마인드 컨트롤을 하고 있다.